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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멋과 낭만에 관하여
커피의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매혹하는 것일까요? 그 고혹적인 향과 색 때문일까요? 잊을 수 없는 맛 때문일까요?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 뿌리를 내린 카페 문화 때문일까요? 왜 찻집이나 초콜릿이나 음료를 파는 가게가 아닌 커피숍이 사람들의 생활문화로 뿌리를 내린 것일까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에게 '커피'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질문했습니다. 대답은 놀랍게도 커피가 주는 느낌이나 이미지, 그리고 커 피를 즐기는 분위기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커피의 블랙이 주는 느낌과 관련하여 인생, 쓴맛, 깜깜함, 미묘함이 언급되었고, 많은 이들이 근사한 카페의 분위기와 관련하여 낙엽, 가을, 그리움, 추억, 휴식, 사람, 만남, 여행, 길, 창가, 나무와 거리를 이미지화했습니다.
그리고 또 커피의 향기를 기억했습니다. 커피를 통해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며 아득해하고 옛사랑을 추억합니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근사한 카페에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합니다. 사랑의 여정처럼 그렇게, 길 위에 선 여행객처럼 그렇게, 인생의 미묘한 순간들에 그렇게, 커피가 있습니다. 향긋한 냄새를 통해 인생의 황홀한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쓰디쓴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하며 고독에 휩싸이는 그 어떤 순간에도 커피는, 근사한 그 무엇인 것입니다. 커피가 아무리 일상이 되어도, 간편하고 쉬운 그 무엇이 되어도, 커피에는 영원히 지나칠 수 없는 낭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는 커피가 바쁜 인생의 순간에 잠시 쉬었다 가는 휴식이자 이자 여유인 까닭입니다. 늘 자유롭고픈 우리의 삶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초석인 까닭입니다. 무디어진 감성을 일깨우는 떨림이기 때문입니다.
각성의 힘, 카페인
커피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카페인입니다. 커피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감미로운 맛과 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몸과 영혼을 자극하고 기운을 고취시킵니다. 그 유명한 소년 칼디가 커피를 발견하게 된 까닭도 카페인이 지닌 각성 효과 때문이었습니다. 카페인이 주는 각성의 힘은 카페 문화와 더불어 자유를 부르짖는 역사의 장 한가운데 커피를 있게 했으며, 시민들의 사교문화를 움트게 했습니다. 시민운동과 독립운동 그리고 문학과 정치의 담론이 카페에서 이루어졌으며 늘 커피 가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평상시와 다르게 활동적이고 즐겁고 무엇보다 각성되어 있는 상태가 됩니다. 알코올이 늘 감상적인 슬픔을 촉진하는 데 비해 한 모금의 카페인은 눈물의 분비를 억제합니다. 커피의 궁극적인 효능이 각성하게 하는 것이라면 알코올의 궁극적인 효능은 그와는 반대로 잠들게 하는 것입니다. 술을 들이키며 이별의 아픔에 눈물을 떨어뜨린다면 커피는 아픔을 잊는 힘과, 견디는 인내를 통해 새로운 만남을 꿈꾸게 합니다. 또한 『커피 위즈덤』의 작가인 테레사 청은 커피를 차와 비교하면서 커 피는 사랑에 생기를 불어넣고 차는 시련의 상처를 어루만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기 있고 각성된 자아는 문학과 정치 그리고 인간 정의에 자유를 말하고 혁명을 논하는 공간으로서의 커피숍을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자기표현의 장, 카페 문화
늘 공간적 매력 때문에 이끌려온 카페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만남의 장소로서의 다방이 그랬고 연인과의 데이트를 위한, 혹은 친한 벗들과의 향기로운 조우를 위한 카페 및 레스토랑의 시대가 그랬습니다. 맛있는 커피가 아니어도 좋은, 분위기가 압도적 이어도 상관없는 공간으로서의 에스프레소 전문점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에스프레소 전문점의 시대에도 자유로움이나 낭만으로서의 공간적 향유가 있었습니다. 그 어떤 커 피의 변형된 형태에도, 그 어떤 시대적 요구에도 변함없이 사유된 근사한 공간적 개념으로서의 카페가 역사의 장 한가운데 그렇게 우뚝하니 서 있었습니다.
이제 공간의 개념을 넘어선 커피를 위한 시대가 됐습니다. 온갖 커피전문점을 돌면서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만나기 위한 여행이 시작됐고, 자신에게 맞는 드립 커피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바야흐로 미각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묽은 숭늉처럼 내려주는 커피가 싫어 차라리 주스나 콜라를 시킵니다. 단순히 유행으로서의 커피도 인테리어 때문도 아닌 진정한 커피의 맛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테리어만 근사한 공간이 아니라 커피가 맛있는,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완벽한 공간에 대한 욕구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에스프레소를 둘러싸고 바닐라 라떼 혹은 카라멜 마끼아또처럼 우유나 시럽이 들어갔던 베리에이션 커피에서, 원재료의 신선도와 맛을 더욱 중요시하는 커피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가미하지 않고 품질이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그 재료가 가진 맛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그리하여 신맛과 쓴맛이 어떻게 강조되는지 그 조화로움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따라 자신의 기호를 정하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원재료의 떨어지는 맛을 감추기 위해 설탕과 프림의 조화로 혹은 우유와 시럽으로 눈가림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훌륭한 원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최고를 향하는 지름길이며 그 원료가 가진 특성을 제대로 살리는 것만이 진정성에 접근하는 최상의 방법임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부드럽고 우아한 콜롬비아를 선택하느냐, 바디감 좋고 스모키하며 묵직한 만델링을 선택하느냐가 바로 맞춤 커피의 전형인 시대가 온 것입니다.
공간적 개념에서의 카페는 말하자면 일상적인 자기와 거리를 둔 놀이의 공간, 모두가 조금씩 자기를 연출하는 퍼포먼스의 공간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풍요롭게 가꾸어내는 것이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공간 개념으로서의 카페, 자기만의 시간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카페가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 또한 감성을 일깨울 수 있을만한 개성을 지녀야 하며, 그 개성은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커피의 맛은 철저히 주인의 철학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하며 인테리어를 비롯, 일하는 사람들의 느낌마저도 계획된 하나의 디자인이어야 합니다. 정신이 들어 있는 공간과 마음이 표현되는 한 잔의 커피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것을 음미하고 즐기는 손님이 함께 있음으로써 커피 집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마치며
양질의 생두로부터, 주의 깊은 로스팅 과정과 정성이 깃든 추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커피는 이제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니다. 브라질 커피, 콜롬비아 커피, 약배전한 커피, 강배전한 커피, 핸드 드립 커피, 에스프레소 커피 등 하나하나의 생산에서부터 공정까지, 그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정성 어린 마음까지 최상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표현해 줄 커피숍에서 나만을 위한 한 잔의 근사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이제 커피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마실 수 있는 음료와는 대별될 뿐만 아니라 그 깊이와 넓이 또한 무궁무진한 심오하고도 풍요로운 하나의 우주인 것입니다. 커피숍에서든, 집에서 끓여낸 커피 한 잔이든 개성이 없고 정성이 깃들지 않은 무심한 한 잔의 커피는 사장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완벽한 한 잔의 커피는 바로 커피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서 나옵니다. 커피와 커피 집에 대한 정확한 컨셉과 투철한 철학뿐만 아니라 커피의 전 과정에 대한 애정과 지식만이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마니아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열정과 탐구의 정신만이 진정한 전문가로서 살아남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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